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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4월 1일 만우절에 거짓말같이 세상을 떠난 장국영, 그래서 4월에는 항상 그가 출연한 왕가위 감독의 컬렉션이 언급되기도 합니다. 그의 필모그래피에서 절대 빠질 수 없는 시작점이자 회귀점으로 언급되며 시사회에서 오우삼 감독이 평했던 걸작으로 손꼽히고, 왕가위 감독의 영원한 페르소나였던 그와의 첫 영화 아비정전을 소개합니다.
아비정전 줄거리 기본 정보
너와 나는 1분을 같이 했어, 난 이 소중한 1분을 잊지 않을 거야. 지울 수도 없어, 이미 과거가 되어 버렸으니까: 자유를 갈망하는 바람둥이 아비는 매일 오후 3시가 되면 축구 경기장 매표소에서 일하는 수리진(장만옥)에게 와서 콜라 한 병을 삽니다. 그는 그녀에게 자신과의 1분을 영원처럼 기억하게 될 거라는 말을 남기며 그녀의 마음을 흔듭니다. 결국 그녀는 사랑에 빠지게 되고 그와의 결혼을 꿈꾸지만, 구속당하는 것을 싫어하는 그는 냉정하게 거절하며 결국 이별하게 됩니다. 그녀와 헤어진 아비는 댄서인 루루(유가령)와 또 다른 사랑을 이어가지만, 이들의 관계 역시 오래가지는 못합니다. 그리고 루루에게 일방적인 이별을 통보한 그는 친어머니를 찾아 필리핀으로 떠나게 됩니다.
아비정전 출연진
작품에서 아비와 수리진, 루루, 그리고 경관(유덕화), 친구(장학우)가 얽힌 애정관계를 보여주지만 단 한 커플도 연결되지 않습니다. 아비를 사랑하는 두 여자와 그런 여자를 사랑하는 두 남자의 관계, 이런 허무함과 고독을 통한 씁쓸함은 앞으로 왕가위 감독이 펼쳐가는 모든 영화가 하나의 이야기처럼 보이는 밑받침이 됩니다. 특히, 두 배우의 대화에서 마주 보는 장면 없이 대화의 주체자가 항상 등을 보이고 있는 묘사도 이런 맥락에서 모든 관계가 단절되었거나 불안한 것임을 이야기하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당시 홍콩 반환을 앞둔 홍콩 주민들이 처한 상황과 심리가 각 캐릭터에서 녹아들었습니다. 친어머니에게 버림받고 한 여자에게 머물 수 없는 불안감과 어머니가 다른 자신의 정체성, 그리고 앞으로 변화가 가져올 상황의 불안함도 있습니다. 상황적 부분에 맞물린 아비라는 캐릭터와 혼연일체 된 섬세한 여기를 보여주는 장국영이란 배우를 통해 그 당시의 우울한 분위기와 사람들의 상실감을 절절하게 표현합니다. 촬영 당시 34살이라는 나이에도 빛나는 외모와 우수에 찬 눈빛은 역할을 더욱 빛나게 합니다.
아비정전 후기
1분이 쉽게 지날 줄 알았는데 영원할 수도 있더군요: 왕가위 감독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핸드헬드 기법이나 스템프린팅 기법이 사용되진 않지만, 영상 속 흐르는 감성만은 그 시작점임을 알 수 있습니다. 대부분 시간과 기억을 배경으로 이루어지지 않는 사랑을 다루고 있는 그의 필름이기에 그 특징을 쉽게 찾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자조적이고 어두운 감성이 묻어나는 캐릭터와 흐름은 누구보다도 그의 작품임을 느낄 수 있습니다. 단짝인 미술감독 장숙평의 추천으로 만난 크리스토퍼 도일 촬영감독과의 인연도 이 작품을 통해 시작됩니다. 이두 명이 있었기에 왕가위 감독 특유의 미장센과 촬영 기법이 각광을 받으며 완성될 수 있었고, <중경삼림>, <타락천사>, <화양연화>, <해피투게더>, <2046>을 완성시킴에 있어서도 가장 큰 영향을 준 사람들입니다. 수리진과 루루에게 사랑을 받아도 그것을 이해하지 못하기에 친어머니를 찾아 필리핀에 갔지만 아무 소득 없이 기차에서 허망한 죽음을 맞이합니다. 자유롭지만 외로운 아비라는 청춘의 이야기를 통한 인생의 허무함과 씁쓸함이 느껴지는 영화입니다. 그는 시간을 보며 자신이 살아있음을 확인했고 그 공허함을 채우려고 노력했지만, 결국 그것을 이해하지 못한 채 눈을 감습니다. 아마도 당시 연예계에 회의를 느꼈던 그였기에 더욱더 그 눈빛에 절절함이 묻어난 것 같습니다. 왕가위 감독과 그의 페르소나였던 장국영 배우의 첫 작품, 다가올 4월 1일을 생각하며 리뷰를 마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