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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번에는 왕가위 시리즈 중 조금 어려운 영화 타락천사를 소개하겠습니다. 어렸을 적 시청했을 땐 그냥 유행하는 홍콩영화, 그리고 유명한 배우들이 나오는 영화라고만 생각했는데 나이가 조금 먹고 감상해 보니 나름 재미도 있지만 내용을 이해하는 데 있어서 조금 어려운 느낌이었습니다. 심오한 내용과 표현이 가득하고, 스토리보단 영상미와 음악, 그리고 각장면에 내포된 의미에 힘이 실린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오토바이를 타고 터널을 지나는 금성무
    타락천사

     

     

    타락천사 줄거리 기본 정보

    개인적으로 숨겨진 메타포를 해석하며 의미에 대한 접근을 좋아하는 편은 아니지만, 연출된 그의 방식은 이전 중경삼림보다 더 혼란스러웠고, 각 캐릭터들을 생각해 보지 않고서는 도저히 이해하기 어려운 스토리 라인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감독 특유의 세련되고 현혹시키는 듯한 마법 같은 영상미, 그 분위기를 이끌어주는 음악 선곡은 인정하지 않을 수 없고 대본이 있을까 싶은 그의 작가주의 세계에 매력을 느끼게 만듭니다. 특히, 감독의 자아도취적 정서가 유독 짙게 느껴지는데, 그 이야기는 사이사이에 다뤄보도록 하겠습니다.

    낯선 여자에게서 그의 향기가 난다: 킬러가 청부 살인을 하는 동안 그의 파트너는 주인 없는 방에서 침대 시트를 정리하거나 쓰레기를 검사합니다. 그들은 동업한 지 155주나 되었지만 한 번도 만난 적이 없습니다. 킬러는 이제 일을 그만두고 싶지만, 파트너에게 어떻게 말해야 할지 몰라서 다른 방법을 선택합니다. 한편 수감번호 223 하지무는 5살 때 유통기한이 지난 파인애플 통조림을 먹고 말을 잃었습니다. 밤마다 주인 없는 상점에 무단 침입해 장사하던 그는 어느 날 떠나버린 남자 때문에 힘들어하는 찰리를 만나고 그녀를 도와 밤거리를 헤매기 시작합니다. 

     

    타락천사 출연진

    고독한 홍콩의 5인 5색: 배우 여명이 지저분하지만 장인 같은 방식으로 일하는 기억상실증에 걸린 살인청부업자 황재민을 맡았습니다. 그는 한 번에 몇 명을 죽이기도 하고, 보통 직장인처럼 일하듯 9시부터 5시까지 움직이며 퇴근할 때 불을 끄고 버스에 올라탑니다. 그러다 버스 안에서 어린 시절의 예 친구를 만나 이야기를 나누며 인정받는 자신과 진짜 모습의 자신이 얼마나 차이 나는지를 생각하게 됩니다. 결국 그는 이 생활을 끝내고 싶어 하지만 그 방법을 모르는 듯합니다.

     

    다음은 그를 위해 동선을 파악하고, 그가 없을 때는 아파트를 청소하는 살인청부업자의 파트너 역에 배우 이가흔이 나옵니다. 155주간 둘은 만난 적이 없지만 그녀는 그에게 일종의 집착과 애정을 가지게 됩니다. 예를 들어 그의 쓰레기를 집으로 가져와서 그것을 뒤지고 그가 좋아하는 바에 가서 그가 좋아하는 자리에 앉아 그의 침대에서 자위를 한 것 등으로 표현됩니다. 왜냐하면 그 행동들이 그를 가까이에서 느낄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세 번째 등장인물은 어릴 적 유통기한이 지난 파인애플 통조림을 먹고 말을 잃은 하지무 역의 배우 금성무입니다. 그는 밤에 무단으로 남의 가게에 침입하여 거기서 일하고 있다고 생각하면서 장사를 합니다. 여기에 독특하게도 거리를 돌아다니며 여러 사람들에게 자신의 가게인 양 상품이나 서비스를 강요합니다. 그런 그의 앞에 상처받은 찰리가 등장하고 사랑의 감정을 느끼지만, 이내 떠나버리고 시간이 지난 뒤 다시 마주치지만 이런 그를 기억조차 못 합니다.

     

    다음은 사랑하는 남자가 다른 사람과 결혼한다는 사실을 전화로 알게 되는 찰리 역의 양채니입니다. 그녀는 분노와 슬픔에 사로잡혀 남자에게 매달리고 자신은 사랑한다고 믿습니다. 그런 그녀에게 하지무가 찾아오는데, 그의 사랑에도 불구하고 곧 떠납니다. 시간이 흐른 뒤, 그와 테이크 아웃 가게에서 마주하게 되지만, 그녀의 주의를 끌어보려는 노력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그를 무시하며 지나칩니다.

     

    마지막으로 신경쇠약에 걸린 금발 베이비 역의 배우 막문위입니다. 아무도 없는 맥도널드에서 만난 청부살인 업자 황재민에게 접근한 그녀가 어쩌면 그의 과거일지도 모릅니다. 옛 애인이었다 말하며 그에게 밤의 동행이 외에는 아무것도 원하지 않는다고 말하지만, 이내 그녀는 그를 설득해 곁에 있게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상상하고 있습니다.

     전체적으로 상실감에 가득 찬 슬픔과 허무함, 다른 사람과 유대관계를 가질 수 없는 고독, 그리고 그들의 기억에 대해 풀어가고 있습니다. DVD판 영화평론가 정성일 님의 말에 의하면 중경삼림과 더불어 홍콩 스타들을 앞세운 예술영화의 의미에 꽂혀있었고, 홍콩의 현실을 그린 마지막 작품이라 언급됩니다. 그 이유 때문인지 당시를 놓고 봤을 때 영화에 뿌려진 왕가위 감독의 작가주의 세계가 유독 쓸쓸하게 느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듯합니다. 그렇게 서로 다른 기억들로 엇갈리는 5명을 통해 멀어져 가는 홍콩을 표현하는데, 개인적으로는 황재민의 마지막 선택에 대한 내레이션이나 잊힌 사람이 되는 하지무에게서 크게 느껴집니다. 

     

    타락천사 후기 

    호불호가 강하게 나뉘는 평가: 확실히 왕가위 감독이 펼지는 미장센의 극치를 느낄 수 있는 작품입니다. 클로즈업과 광각 렌즈를 통한 인물을 왜곡시키며 독창적인 영상을 만들었고 특유의 스텝 프린팅 촬영 방식은 홍콩 도시의 감성을 듬뿍 담아냈습니다. 한 편의 뮤직비디오 같은 모습은 이후 한국 영화 비트에서도 볼 수 있고, 김선아 배우가 나왔던 유명한 화장품 CF에서도 오마주 되었습니다. 그 왜 여러 광고 뮤직비디오 등에서도 그 촬영 기법을 사용했으니, 그 스타일만큼은 현재까지도 인정받는 것 같습니다. 앞서 언급한 미장센을 떠나 스토리적으로는 대중적이라고 말하기 어렵습니다. 여명, 금성무, 이가흔, 막문위, 양채니까지 쟁쟁한 홍콩 스타들을 앞세웠지만, 탐미주의적 시선이 담긴 이야기들이 펼쳐지며 이것이 궁극적으로 무엇을 이야기하고 있는지 접근이 어렵습니다. 기억을 잃은 킬러와 그를 연모하는 동업자, 그리고 정체를 알 수 없는 킬러의 옛 애인, 불법점거를 하고 천연덕스럽게 장사하는 벙어리와 이별에 상처받은 한 여인까지 그 맥락을 이해하기란 쉬운 일이 아닌 듯합니다. 다만, 좌우 공간이 축소되거나 와이드 하게 펼쳐지는 장면들과 반복되는 듯한 기억에 대한 언급이 주제를 생각하게 만듭니다. 특히, 하지무가 캠코더로 아버지를 촬영하고 돌아가신 뒤 되돌려보는 것은 당시의 현실에 대한 복제, 현실의 재현을 통해 잊혀가는 모습들을 기록하고 기억함에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영상 속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면 현재의 불행함을 덮는 것 또한 그 기록인 것입니다. 이런저런 이유를 들어, 이 작품은 왕가위 감독이 표현하고 싶어 했던 모든 것을 표출했다고 생각합니다. 이후에 올릴 화영연화가 절제미라면, 이것은 그 반대로 과잉된 표현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습니다. 뭐 어쩌면 그것이 또 매력일지도 모르겠습니다. 홍콩을 배경으로 고독하고 씁쓸한 다섯 사람의 모습을 통해 지상에 떨어진 타락한 천사를 표현하고 싶었던 감독의 짙은 감성이 느껴지는 영화의 후기를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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